14세기 당시 묘지는 교회의 성직자나 지역의 토호에게 인간적 권위의 상징으로 높게, 크게 그리고 예술적으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묘지는 교회나 주거지역에 위치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고 해요. 16세기 페스트의 창궐은 독일의 묘지문화를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교회묘지와 공공묘지를 분리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페스트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묘지는 주거지역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한편, 1750년 영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공동묘지는 정원식 공원같은 형태로 탈바꿈 하였습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가족묘에 대한 의식이 생기게 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와 공원묘지가 독일에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묘지석과 십자가형의 지석이 일반화되었으며 대부분의 공동묘지에는 의식을 위한 교회와 기념관이 세워지게 되었으며 현재 거의 모든 큰 공동묘지에는 장례를 위한 교회와 기념관이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우리 나라와 같은 개인분묘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공동묘지가 묘지 수효의 대부분을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녹지공원의 역할 등을 한다고 합니다. 이 곳의 묘지들은 공업도시의 오염된 공기를 걸러주는 공기청정제 역할을 하게 되어 시민들로부터 녹색유지비 명목의 세금으로 울창한 나무들의 관리유지를 위해 충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인의 묘지방식의 선택은 자유롭지만 모든 시신은 공동묘지에 안치하며 화장한 유골이라도 외부로 나갈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 이들은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엄격한 시한부 매장제도를 행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시한부 묘지제도의 기간은 프랑크푸르트는 20년이며, 프랑크푸르트의 시한부매장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가족묘가 아니면 재계약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임대기간은 각 묘지의 토질에 따라 시체가 충분히 부패할 수 있는 기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기간이 끝나는 시점에는 묘지에는 거의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하네요.



작성 : 13기 프로보노 press b팀 정소담, 이지연​

 

[출처] [요람에서 무덤까지, 세계는?] 겨울, 삶을 마무리하다 - 세계의 장례문화 ①|작성자 BBB Korea

 

저작권자 © 경기종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